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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

사상가 마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 작성일 19-06-10
29개주

타밀 나두 주

소개

이름: 마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 출생-사망: ? - BC 392 별칭: 고살라 만칼리푸타 활동분야: 사상, 종교 직업: 자유사상가

전기

마칼리 고살라는 고대 인도의 붓다와 비슷한 시기에 갠지스 강 중류 지역에서 세력을 떨친 자유사상가이다. 따밀나두주(州) 의 띠루치라빨리(Tiruchirappalli)에서 아버지 만카(Mankha)와 어머니 바다(Bhadda)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이나교의 개혁자인 마하비라와 같은 종교 공동체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자이나교의 바가바띠 수뜨라(Bhagavati Sutra)의 기록에 의하면 후에 고살라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을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기원전 5~3세기 <우파니샤드>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 중, 푸라나카사파(Purana Kassapa), 산쟈아벨라지푸타(Sanjaya Belattiputta), 아지타케사캄발라(Ajita Kesakambalin), 파구타카자야나(Pakudha Kaccayana), 니간타나타푸타(Nigantha Nataputta)와 함께 베다(Veda)성전의 권위를 부정한 육사외도(六師外道) 중에 하나의 사상가로 인식되고 있다. 베다의 전통과 공개적으로 단절하고, 바라문교의 지배 질서와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신흥도시의 왕후, 귀족, 부호들의 정치적, 경제적 원조 밑에 활약하였다.

저서

사상

모든 생명체가 윤회하지만 그들이 업에 따라 육도의 생사를 거듭하거나 해탈하게 되는 것에는 원인도 조건도 없다는 우연론(偶然論)을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운명이 있으며, 사람의 행위나 운명은 모두 자연계의 운행이 정한 약속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고, 그렇기에 힌두의 까르마(업)도 믿지 않았다.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적이나 윤리적인 관행이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며,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행하는 이유는 우주의 장대한 법칙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대로 방치해 두면 840만 대겁(大劫)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경과하여 저절로 해탈에 도달한다고 하는 숙명론(宿命論, fatalism)을 주장하였다. 자유의사에 기반한 행위를 부정하였으며, 끊임없는 환생을 앞당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결정론을 내세웠다. 불교나 자이나교는 까르마를 믿지 않는 이들을 극적인 운명주의자로 묘사했지만 그는 예정론에 대한 신념이 비관적인 것이 아닌 유럽의 칼빈주의와 같은 선결(先決)되어 있음을 믿는 것이며 오히려 이것이 낙관적임을 설명했다. 이것은 단순히 도덕적 강요를 하지 않고,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지 않으며, 행위로 말미암아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또한 힌두교의 바이셰시카 학파와 유사한 ‘원자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이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특징과 우수성도 원자의 총체로 결정된다고 하며, 이 또한 우주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 원자이론은 후에 자이나교, 불교와 힌두교 전통의 수정된 원자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생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영혼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 ·득(得) ·실(失) ·고(苦) ·낙(樂) ·생(生) ·사(死) 12요소를 꼽았고, 실천적인 부분에서는 엄격한 고행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가 세운 교단을 아지비카(Ajivika)라고 한다.

그의 영향력

고살라가 세운 아지비카교는 현재 우따르 프라데시 지역에서 정립되고 발전됬으며, 그의 사상은 기원전 4세기 마우리아 왕조 빈두사라(Bindusara) 황제시대에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그 후 아지비카 철학의 신조는 그 유력을 잃긴 했지만 인도 까르나타카와 타밀나두주(州)에서 14세기 까지 이어지며 2000년 정도의 역사 동안 자리잡게 되었다. 마칼리 고살라의 아지비카 사상은 불교와 힌두교의 많은 학파에 영향을 끼쳤지만 후에 자이나교(敎)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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